[천자 칼럼] '곤 사마'의 추락

입력 2018-11-20 18:55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크고 화려한 꽃일수록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 개화(開花)는 느리지만 낙화(落花)는 순식간이다. 세계 2위 자동차그룹인 르노·닛산·미쓰비시얼라이언스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추락하는 과정도 이를 닮았다. 1999년 부도 직전에 몰린 닛산자동차 경영을 맡아 2년 만에 흑자를 일구고, 르노와 미쓰비시까지 지휘해 온 ‘세계 자동차업계의 마술사’가 그제 횡령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닛산 재건’ 덕분에 일본에서 ‘곤 사마’로 불려 온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 경영인이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레바논에서 자란 뒤 프랑스 명문 에콜폴리테크니크(국립이공과대학)를 졸업했다. 24세 때 자동차 타이어 회사 미쉐린에 입사해 31세에 브라질 법인 사장이 됐고 42세에는 르노자동차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닛산을 되살린 그는 2001년 시사주간지 타임과 CNN이 각각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에 올랐고 이듬해엔 포천지의 ‘올해의 기업인’에 뽑혔다. 이후 20년 가까이 닛산 CEO로 장기 집권하다가 불명예 퇴진을 맞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된 게 문제였다”며 한탄한다.

세계적인 ‘스타 CEO’에서 한순간에 ‘최악의 CEO’로 전락한 사례는 많다. 2012년 37세로 야후 최고경영자가 된 머리사 메이어는 ‘슈퍼모델 외모에 컴퓨터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명문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금발 미녀, 젊은 구글 부사장, 고액의 스톡옵션 등 수식어도 다양했다. 하지만 연간 영업이익을 견실하게 내던 야후코리아를 해체하고, 직원을 지속적으로 해고하는 등 ‘마이너스 경영’으로 일관하다 회사를 말아먹고 말았다.

휴렛팩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전 회장도 포천 500대 기업 첫 여성 CEO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창업자 가문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합병을 강행한 끝에 몰락을 자초했다. 강압적인 경영방식과 고액의 보수, 회사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며 튀는 행동으로 비난을 받은 그는 직원을 3만 명이나 감원한 뒤 자신도 해임됐다.

미국 대표 제조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도 한동안 ‘경영의 귀재’로 불렸다. 그러나 재임 기간 고질적인 문제들을 은폐한 사실이 밝혀졌다. 웰치는 21년간 제조업의 본질보다 금융업에 치중했고, 이멜트는 17년간 방향성 없는 인수합병으로 부실의 씨앗을 키운 뒤 회사와 함께 쇠락했다.

이들의 추락 배경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스스로 기적을 일궜다는 자만심, 오랜 타성에 의한 리더십의 퇴색, 이로 인한 조직의 정체성 혼란이 그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 경영도 이와 같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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